[장규호의 논점과 관점] 임대차 규제, 운이 좋았을 뿐

입력 2022-08-30 17:49   수정 2022-08-31 00:19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 시행 만 2년을 맞는 이달이 되면 전세금을 크게 올린 매물이 급증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5% 인상 폭에 갇혔던 집주인들이 새 세입자를 맞으면서 대폭 전세금을 올려 받을 게 뻔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진 않았다. 오히려 전세 수요가 자취를 감추면서 집주인들이 거꾸로 세입자를 못 구하는 ‘역(逆)전세난’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이 2년 전보다 118% 늘어난 채로 쌓여 있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금리 급등을 주요인으로 꼽는다. 전세대출 금리는 연 5%대로 올랐는데 전·월세 전환율은 4%대이니, 세입자들로선 월세 낀 전세(일명 준전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준전세 수요만 늘고, 순수 전세 수요는 줄었다. 대출받아 셋집을 옮겨볼까 하던 사람들도 금리가 계속 오를 것이란 뉴스에 마음을 접었다.
금리 급등에 전세대란 비켜가
임대차 시장에 직접 가한 가격 규제가 2년 뒤 전셋값 폭등을 부를 것이란 그동안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시장 원리에 반하는 임대차 규제 무리수는 이미 전세금 3중 가격이라는 왜곡 현상을 불렀다. 계약 갱신으로 낮게 형성된 전세금, 새로 세입자를 맞아 크게 뛴 전세금, 집주인·세입자 간 갈등에 중간에서 타협된 전세금이 그것이다.

이 대목에서 경제학 연구의 중요 전제 중 하나인 ‘케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를 떠올려본다. 만약 금리에 큰 변동이 없었다면(케테리스 파리부스) 지금쯤 전국은 전세대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을지 모른다. 임대차 규제의 부작용은 실로 어마어마할 수 있는데, 이번엔 운이 좋았을 뿐이다. 금리 급등에 전세대란은 비켜가고, 약자에게 그나마 덜 가혹한 역전세난이 출현했다. 하지만 2년 뒤 전세 가격이 뒤미처 급등하지 말란 법도 없다.

하나의 변수가 어떤 파급 경로를 거쳐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망해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크기는 몰라도, 방향성은 내다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 정부에서 급증한 반(反)시장적 정책은 그 운명이 이미 결정지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장 직접 개입의 운명 뻔해
근로자의 ‘저녁 있는 삶’을 위해 주 52시간제를 시행한다더니, 결과는 소득 감소와 이를 보전하기 위한 ‘투잡 뛰기’뿐이었다는 게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에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급조한 뉴딜펀드는 집행률 25%에 누적수익률 1%대라는 저조한 성과를 보이며 관제펀드의 말로를 보여주고 있다. 낙농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2013년 도입한 원유(原乳) 생산비 연동 가격결정 방식은 국내산 원유값이 수입 원유의 두 배가 넘는 기형적 가격 구조를 형성했다. 물론 사회갈등 비용을 줄이고, 일종의 안전망을 만든 효과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사회 정책적으로 의미 있을 뿐, 경쟁을 촉진하고 경제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까진 역할하지 못했다.

이런 정책 실패를 목격하고도 윤석열 정부는 중기 납품단가연동제를 다음달부터 시행하겠다고 하고,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폐지’에서 ‘유지’로 방침을 바꾸려 한다. 야당과 민생 행보 경쟁을 벌이는 것은 좋은데,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워 민생을 살찌우기보다 경쟁을 제한하는 영역 지켜주기에 머무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민생은 ‘서민 민생’만을 뜻하는 것이니 그렇다 쳐도, 새 정부가 비슷한 느낌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왠지 어색하다. 그 속에서 무슨 변화와 혁신, 창의가 샘솟겠나. 이전 문재인 정부랑 무엇이 다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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